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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화의료역사이야기

영유아 건강 증진에 앞장섰던 릴리안해리스기념병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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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일 2025-02-10 조회수 901


지금은 사라졌지만 1980년대 초반까지만해도 어린이날을 즈음하여 우량아 선발대회가 개최되었다. 또 동네 사진관 앞 진열장에서는 튼실한 남아의 돌 기념 누드사진이 걸려있는걸 심심치 않게 볼 수 있다. 국민 대부분이 힘들고 어려웠던 시기 튼튼하고 건강한 어린이가 나라의 미래 국력이 될 수 있다고 믿었던 그 시대의 바람이 투영된 모습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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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량아 선발대회는 경제가 성장하면서 못 먹는 아이들이 줄어들고 아이들을 상품화한다는 인식이 높아지며 역사속으로 사라졌지만 2010년대까지 각 지자체들에서는 모유만을 먹고 자라는 아이들을 대상으로 건강한 아이 선발대회를 개최하기도 하였다. 국민 건강의 기초가 되는 유아기 건강과 신체발달, 건강한 인격형성은 어느 시대이든 중요한 부분이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이같은 영유아 건강에 대한 관심과 그 중요성에 대한 대중적 홍보는 언제 어떻게 시작되었을까?


릴리안해리스기념병원(동대문부인병원) 초대 원장이었던 메리 스튜어트(M. Stewart) 의사는 1911년 한국에 파견되어 1년여간 활동을 펼친 후 자신이 소속된 선교회에서 발간하는 잡지(Woman's Missionary Friend)에 미국에서 비누를 가져와 한국 엄마들에게 나누어 준 후 아이들 목욕시키는 것을 가르쳐주고 싶다는 열망을 기고하였다. 그리고는 릴리안해리스기념병원이 개원 후 어느 정도 자리를 잡은 1914년경부터 베이비 클리닉(Baby Clinic) 프로그램을 열어 5세 미만 영유아들에게 목욕과 진료 서비스를 제공하기 시작하였다. 1915년부터는 병원 내에 어린이 병동도 설치하였다.


이같은 기반 하에 릴리안해리스기념병원의 영유아복지사업은 더욱 활짝 꽃피우기 시작하는데 이를 주도적으로 진행한 이는 엘리자베스 로버츠(Elizabeth S. Roberts, 1884~1891) 간호사였다. 스웨덴 출신인 로버츠 간호사는 유년시절 미국으로 이주해 간호사 교육을 받은 후 1915W.F.M.S. 선교사로 한국 파견이 결정되었으며 1916년 릴리안해리스기념병원 간호사 소임을 부여받아 12월 입국하였다.

<엘리자베스 로버츠 간호사>



서울 도착 후 그는 볼드윈 진료소 건물에 아기 욕조, 비누, 타올, 의자, 이유식 조리기구 등을 비치하고 엄마들에게 아이를 데려오게 하여 아기 돌보는 법, 목욕시키는 법, 이유식 만드는 법 등을 가르치기 시작하였다. 이 사업 시작 후 9개월 동안 이곳을 찾아온 엄마와 아기는 2,446명이었으며 324회의 가정방문도 진행하였다. 로버츠 간호사는 이같은 활동과 함께 지속적으로 올바른 출산 교육, 산모 관리, 여성과 아이들 대상의 위생교육 진행 및 보건강좌와 위생관련 전시회 개최 필요성에 대해서도 목소리를 높였다.


릴리안해리스기념병원의 영유아복지사업은 태화여자관(현 태화기독교사회복지관)과 손을 잡으며 더욱 확장되었다. 1921년 한국 최초의 인보관으로 출발한 태화여자관은 19241월 태화진찰소를 개설했는데 그곳에 파견이 확인된 의료진 모두가 릴리안해리스기념병원 소속이었던 로제타 셔우드 홀(의사), 로젠버거(간호사), 한신광(간호사 겸 산파)이었다. 이들은 아동진찰, 아동건강관련 보건교육, 순회산파사업 등을 진행하였는데 진찰소에 등록을 해서 꾸준히 정기검진을 받은 아이들에게는 시상도 하였다.


192453일 생후 3개월에서 5세 사이의 아동을 대상으로 한 한국 최초 영유아 건강진단대회(Better Baby Contest)가 개최되었다. 태화진찰소 주관으로 개최된 이 행사에는 500여명의 아이들이 참가해 인산인해를 이루었다. 1924년 행사가 성황리에 개최되자 태화진찰소는 이후 매년 5~6월 이 행사를 진행하였으며, 해마다 참가 아동이 증가하였다. 조선총독부에서도 1927년부터 55일을 유유아애호일(乳幼兒愛護日)로 지정하여 임산부 및 유유아무료진찰, 아동구강무료진찰 등의 사업을 시작하다 1931년부터는 유유아애호주간으로 기간을 확대하고 우량아동 심사 및 시상도 진행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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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일보에 소개된 1925년 건강진단대회날의 모습은 다음과 같았다.

 

“(상략) 순서중에는 특별히 태화유치원의 유희창가가 만장의 흥미를 이끌었으며

예방에 대하야라는 연제로 여의 유영준 양의 간단한 강화가 있었고 간호부 한신광 양이 건강후원회에 대한 간단한 설명을 하였다

상 받은 아기들의 이름은 다음과 같으니 일등 김용문(17개월), 임표(5개월), 송신임(, 43개월), 장주원(29개월)

(중략)

일개월에 한번씩 육개월동안 태화진찰소에 와서 건강진단을 행한 아기 열두명을 뽑아 

미세스 빌링스가 기증한 금빛 메달을 목에 걸어주었다

건강진단은 3개월부터 18개월까지, 18개월부터 36개월까지, 36개월부터 60개월까지의 세가지로 나누어 

그 가운데서 각각 일, 이등 하나씩을 뽑았는바

이번 성적은 아기의 건강보다도 그 아기 위생에 대하여 더 주의하여 보았음으로 

몸이 튼튼하고 모든 발육이 충분한 아기들 중에도 어머니가 매일 목욕을 시켜주지 않고 

손톱발톱을 잘 깍아주지 않음으로 말미암아 입상치 못한 아기가 있음을 

매우 유감이라고 유영준 양은 말하더라. (하략)” 

(조선일보1925518)


기사에서 확인할 수 있듯이 당시 태화진찰소에서 주관한 영유아 건강진단대회는 단순히 발육상태가 좋은 아이가 아닌 아이의 평소 위생 상태를 매우 중요한 심사 기준으로 삼고 있었다. 잘 먹는 것 못지않게 이 시기 건강을 지키기 위해서는 위생과 청결이 무엇보다도 중요했음이 드러나는 부분이다. 그리고 릴리안해리스기념병원에서는 이미 1910년대부터 지속적으로 이와 관련한 교육들을 진행하며 위생적인 환경에서 건강하게 아이 키우기 캠페인을 그 누구보다도 앞장서 진행하고 있었던 것이다.


여성과 어린이를 위해 시작된 정동 보구녀관의 정신은 릴리안해리스기념병원 시기 더욱 구체적인 활동으로 꽃을 피웠고 이는 지금까지도 이화의료원 존재의 중요한 뿌리 가운데 하나이다. 이제 20245월 문을 연 이대엄마아기병원이 이같은 정신을 이어가며 엄마와 영유아 건강 증진에 있어 선도적인 역할을 해나갈 것으로 기대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