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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화의료역사이야기

일제강점기 로젠버거 간호사의 영유아 대상 우유급식사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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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일 2025-02-10 조회수 1,104

 


지난 7년간 아동사업을 해온 결과, 우리 아이들도 잘만 먹이면 6개월까지 완벽하게 성장함을 알 수 있었다

한국에서 아동 사망률이 대단히 높은데 1~2살짜리 아기들이 특히 많다. 바로 그 시기가 아이 성장의 기초가 되는 때이다

(중략

또한 한국에서는 10세 미만 아이들의 사망률이 50%에 이르고 있다

그러니 어째서 이렇게 많이 죽는지 살펴봐야하지 않겠는가

미국과 비교하면, 한국에서는 무려 75%의 손실을 입고 있는 것이다.

이렇게 된 가장 큰 이유 중 하나는 아이들의 영양상태가 아주 심각하다는 것인데

아이들이 우유로 양육되지 않는다는 것이다.” 

(“Child Welfare and Public Health”, Annual Report of Korea Woman's Conference of the Methodist Episcopal Church(1930))

 

위 글은 1930년 당시 태화여자관 내 태화진찰소에서 영유아 복지사업을 담당하고 있던 엘마 로젠버거(Elma Rosenberger) 간호사가 작성한 보고서 가운데 일부이다. 이 보고서에서 로젠버거 간호사는 한국 영유아들의 영양 부족 상태가 아주 심각하며 아이들에게 우유를 먹이지 않고 있는 것을 그 원인 중 하나로 짚었다.


로젠버거는 W.F.M.S.(미감리교 해외여성선교회) 소속 간호 선교사로 1921년부터 동대문부인병원에서 근무를 시작, 1924년부터는 태화여자관에서 영유아 보건사업을 담당하고 있었다. 영유아 진료, 목욕 사업, 아이건강대회 개최 등의 사업을 진행하며 건강한 아동을 키우기 위한 방법과 그 중요성에 대해 지속적으로 한국인들에게 알리고 교육시키는 것이 그녀의 주된 업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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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사업들과 함께 1928년부터 로젠버거 간호사는 우유급식소 사업을 추진하였다. 한국에서 영유아들에게 우유 급식을 시작한 것은 1925W.F.M.S. 소속 선교사로 공주 지역에서 유아복지사업을 담당하고 있던 마렌 보딩(Maren P. Bording) 간호 선교사에 의해서였다. 보딩 선교사는 우유 급식 사업을 시작한 후 2년 정도가 지나 작성한 보고서에서 한국 전체 영아 사망률이 35%인 것에 비해 자신들의 복지 사업 혜택을 받은 영아 사망률은 5%에 불과하다는 사실을 언급하였다.


로젠버거 간호사는 보딩에 이어 192810월 태화여자관에서 우유 급식소 사업을 시작하였다. 그런데 당시 우유는 서양인들에게나 익숙한 것이었지 한국 사람들에게는 소젖을 먹는다는게 여간 이상한 일이 아닐 수 없었다. 그러나 제대로 먹지 못해 죽어가던 아이가 우유를 먹고 살아나는 것을 보자 점차 한국인들 사이에서도 우유에 대한 선입견이 사라지기 시작했다.


그러나 1920년대 한국 땅 안에서 우유를 조달하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었다. 19세기 말 개신교 선교사들이 한국에서 거주하기 시작하며 자신들의 주된 양식으로 우유를 찾았지만 당시 국내에 우유 생산이 전무했기 때문에 이들은 우유 대신 가공된 연유를 먹었다. 시간이 흐른 1920년대라고 해서 우유 생산 상황이 나아질 이유는 없었다. 그러나 우유에 대한 수요가 늘어난 것은 분명했기에 선교사들은 미국으로부터 우유 수입 비용을 후원을 받기도 했으며 젖소를 대신한 염소 사육을 계획하기도 하였다.


우유 수급이 어려운 상황에서 로젠버거가 태화여자관에서 시작한 급식 사업은 우유가 아닌 콩젖, 즉 두유(soy milk)를 보급하는 것이었다. 콩젖은 북경협화의학교(Peking Union Medical College)의 어니스트 조(Ernest Tso) 의사의 고안으로 개발되었다. 메주콩을 주 원료로 하는 콩젖은 콩을 갈아 가루로 만들고 거기에 물과 설탕 및 다른 영양분을 섞어 만든 영양식이었다. 선교사들은 사람들 앞에서 직접 콩젖 만드는 과정을 시연, 시음으로 하며 그것의 안전성을 입증하였다.


로젠버거는 1931415~17조선일보에는 콩젖을 만들어 먹이는 법과 그 효능에 대해 매우 자세하게 소개하는 글을 게재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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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드는 법이 쉬운 듯 보이기도 하지만 꽤 손이 많이 가기에 로젠버거는 이런 준비를 가정에서 하기 어려우므로 누구든 원하면 태화진찰소에 찾아와 콩젖을 받아 아이들에게 먹일 것을 독려하였다. 이렇게 영유아 건강 증진을 통한 아동 사망률 저하를 위해 도입된 콩젖은 빠르게 확산되었고 1938년 로젠버거는 이제 콩젖이 전국에서 쓰이고 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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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현재 우리가 살며 당연하게 여기는 많은 것들이 그 시작 과정에서는 큰 용기와 도전이 필요했음을 역사를 통해 배운다. 1910년대 산모와 아기의 건강을 위해 병원 출산 문화 확산을 주도했고, 1920년대에는 위생교육과 영양교육을 통해 영유아의 건강 증진을 위해 한걸음 더 나아가는 행보를 보였던 릴리안해리스기념병원(동대문부인병원)과 태화진찰소 직원들의 모습에서 우리는 그러한 용기와 도전을 보고 배울 수 있다. 이제 이대엄마아기병원은 이같은 선배들의 활동을 바탕삼아 엄마와 아기에게 치료를 넘어선 치유를 선사할 수 있도록 힘쓸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