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으로 바로가기

이화의료역사이야기

평양 광혜여원에서 진행된 보구녀관 간호원양성학교 졸업식

파일 특별기고_블로그_메인.jpg       
작성일 2025-02-10 조회수 1,106


1903년 보구녀관 내에 설립된 우리나라 최초의 간호원양성기관인 보구녀관 간호원양성학교는 190811월 이그레이스, 김마르다라는 한국 최초의 간호사를 배출하며 어려운 환경에서도 한국 간호 역사를 개척하기 시작했다. 20세기 초 여성들을 대상으로 하는 교육 기관이 매우 희박했던 시기에 간호사라는 특정 직업인을 양성하던 보구녀관 간호원양성학교는 여성 교육사에 있어서도 중요한 의미를 가지고 있다.


개교 이후 19105월까지 마가렛 에드먼즈, 알타 모리슨 간호원장의 책임하에 운영되던 간호원양성학교는 모리슨 간호원장의 후임이 오지 않아 1911년까지 메리 커틀러 의사의 지도 하에 운영되었다. 보구녀관 간호원양성학교의 새로운 책임자 나오미 앤더슨이 온 것은 1912125일로 이 때는 정동 보구녀관의 업무는 축소되어 가고 동대문의 릴리안해리스기념병원은 아직 완공되지 않은 시기였다. 이에 앤더슨 간호원장은 평양으로 가서 한국 생활의 기본을 익히기 시작하였다.


한편, 191112월 아만다 힐만 의사가 입국해 이듬해 3월 보구녀관 담당자가 되었고 커틀러 의사는 평양 광혜여원으로 임지를 옮겼다. 이처럼 지금까지 간호원양성학교를 맡았던 커틀러 의사와 새로 이곳을 담당할 앤더슨 간호원장 모두 평양으로 가게 되었으므로 기존의 보구녀관 간호사들과 간호원양성학교 학생들 역시 평양으로 임시 이전할 수밖에 없었다.


간호원양성학교의 평양 시대는 길지 않았다. 앤더슨 간호원장은 19129월 학생들을 데리고 서울로 돌아가 릴리안해리스기념병원에서의 간호원양성학교 시대를 열었는데, 양성학교 학생들 중 세 명은 평양에 남았다. 그리고 이 때 남은 학생 중 한 명이었던 이희망(Lee Hope)191337일 평양 남산현 감리교회에서 졸업식을 가졌다.


기록에 따르면 이희망은 이화학당 졸업생으로 1909년 후반에서 1910년 초 사이 보구녀관 간호원양성학교에 들어온 것으로 추정된다. 보구녀관 간호원양성학교의 정식 수업연한은 6년이었지만 이희망은 이화학당을 졸업한 학력을 인정받으며 3년 여의 교육을 받은 후 간호원양성학교를 졸업할 수 있었던 것으로 보인다.


로제타 홀 의사는 Korea Mission Field19135월호에 이희망의 졸업식에 대해 상세히 기록을 남겼다.


external_image



졸업식에는 광혜여원 의료진들 외에도 마츠나가 평안남도 장관, 사토무라 평양 위수병원장과 같은 평양지역 고위 인사들이 참석해 연설을 하였다. 또 훗날 동경여자의학전문학교를 졸업하고 동대문병원에서 근무하는 현덕신 의사의 오빠이자 당시 남산현 교회를 맡고 있던 현석칠 목사, 이그레이스 간호사의 남편이었던 이하영 목사도 자리를 하여 기도를 맡았다. 이날 행사에서는 총 네 곡의 찬송이 울려퍼졌는데 감리교에서 운영하던 보통학교, 로제타 홀이 주관하던 맹아학교, 광혜여원 산하 홀과 커틀러가 지도하던 여자 의학반, 그리고 감리교 정의여학교와 장로교 숭의여학교가 통합 운영하던 평양 여자 연합학교 이 네 곳 소속의 여학생들이 졸업식을 더욱 풍성하게 빛내주었다.


이처럼 이 날의 졸업식은 단순히 간호사 한 명의 졸업식이 아닌 평양 지역 감리교 소속 모든 구성원들이 함께 참여하는 큰 행사였다.


이 날의 모습을 전체적으로 조망하는 사진은 없지만 주인공인 이희망 간호사가 졸업장을 들고 있는 사진은 몇 장이 남아있다.


아래 사진은 커틀러 의사가 이희망 간호사에게 졸업장을 전달하고 있는 모습이다. 이희망의 양 옆으로는 1회 졸업생 이그레이스와 김마르다가 서있다.


external_image



위 사진과 배경이 같은 곳에서 찍은 이희망 간호사의 단독 사진도 있다. 이 사진에서도 역시 졸업장을 들고 있는 것으로 보아 위 사진과 같은 날 찍은 사진인 것으로 파악된다.


external_image



1914년 감리교 여선교회 한국 연회 때 제출된 평양 광혜여원 보고서에도 이희망의 졸업식 날 촬영한 것으로 보이는 사진이 수록되어 있다. 왼쪽 세번째 손에 졸업장을 들고 있는 사람이 이희망 간호사이다. 졸업식 후 이희망 간호사는 서울 릴리안해리스기념병원에서 졸업 간호사로서의 삶을 시작하였다.


external_image



이희망 간호사의 졸업식이 있은 지 5년 후인 1918430일 평양 광혜여원에서는 특별한 행사가 열렸다. 이 날의 행사는 커틀러 의사 내한 25주년, 평양 광혜여원 개원 20주년, 보구녀관 간호원양성학교 개교 15주년, 조선 땅에서 의학공부를 하고 의사 면허를 받은 최초의 한국인 여의사가 탄생한 해 등 총 네 가지의 사건을 기념하기 위한 자리였다.


그런데 이 날 또 하나의 특별한 이벤트가 있었으니 그것은 바로 이미 졸업 간호사로 활동하고 있었지만 졸업장을 받지 못한 광혜여원의 한 간호사를 위한 졸업장 수여식이었다. 주인공은 장데이지(Chang Daisy)1912년 커틀러 의사가 서울에서 평양으로 옮겨올 때 함께 왔던 보구녀관 간호원양성학교 학생이었다. 이후 광혜여원에서 졸업 간호사가 되기 위해 필요한 기간을 다 채웠고 면허를 받았음에도 다른 학생들과 달리 릴리안해리스기념병원으로 돌아가지 못하고 졸업식도 하지 못해 졸업장을 받지 못한 채로 광혜여원에서 근무한 간호사였다.


아래 사진이 이 날 찍은 사진으로 가운데 앉아있는 커틀러 의사 좌우로 김해지, 김영흥 의사가 자리하고 있다. 이날 안수경 의사는 몸이 아파 참석하지 못하였다. 맨 뒷줄에는 간호사들이 서있는데 간호사들 가운데 유일하게 가슴에 장식을 달고 있는 오른쪽 끝에 서있는 인물이 이 날 졸업장을 받은 장데이지 간호사로 추정된다. 장데이지 옆으로는 차례대로 이희망, 신원미상, 이경선, 김마르다 간호사가 서있다.


external_image



장데이지는 이미 졸업 간호사로 오래 활동하고 있었기에 굳이 졸업장을 주지 않아도 큰 상관이 없었을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커틀러 의사는 자신이 주인공이었던 행사날에 시간을 할애하여 장데이지에게 졸업장을 전달했다. 에드먼즈 간호사와 더불어 보구녀관 간호원양성학교 설립의 주역이었던 커틀러 의사였기에 이같은 행사 시간을 마련했던 것이 아닐가란 생각을 해보게 된다.


이희망, 장데이지의 이후 행보를 알려주는 자료는 아직 발견되지 않는다. 향후 지속적인 사료 발굴과 분석을 통해 보구녀관 간호원양성학교 졸업자들과 그들의 활동에 대한 다양한 이야기들이 밝혀지길 기원한다.


다음글 다음글이 없습니다.